미학

빈 액자에 남은 책임—옌스 하닝과 예술의 경계

오경수 2026. 5. 7. 10:00

 

예술은 어디까지 예술일 수 있는가?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 질문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질문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아름다움의 기준을 흔들고, 어떤 작품은 재료와 형식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어떤 작품은 미술관이라는 제도 자체를 시험한다. 덴마크의 개념미술가 옌스 하닝(Jens Haaning, 1965~)의 <돈을 갖고 튀어라(Take the Money and Run)>는 이 모든 질문을 한꺼번에 끌어들인 작품이었다. 그것은 단지 텅 빈 액자 두 점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묻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예술가의 노동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지, 미술관은 논란을 어디까지 전시의 일부로 흡수할 수 있는지, 예술이라는 이름은 계약과 법적 책임을 어디까지 흔들 수 있는지를 동시에 묻는 사건이었다.

 

처음 이 사건이 알려졌을 때, 대중의 관심은 주로 “작가가 미술관 돈을 들고 튀었다”는 자극적인 이야기로 향했다. 빈 액자, 사라진 현금, 작가의 뻔뻔한 인터뷰는 충분히 가십처럼 소비될 만했다. 그러나 법적 판결과 최종 합의까지 끝난 뒤에 보면,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현대미술이 놓인 구조적 조건을 드러낸 사례로 남는다. 예술은 제도를 비판하면서도 제도 안에서 전시되고, 예술가는 자유로운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계약의 당사자이며, 미술관은 비판받는 대상이면서도 그 비판을 다시 소장품으로 편입할 수 있다. 하닝의 빈 액자는 바로 이 복잡한 구조를 드러낸다.

 

의뢰, 현금, 그리고 빈 액자

2021년 9월, 덴마크 올보르의 쿤스텐 현대미술관에 이상한 작품이 도착했다. 커다란 액자 두 점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폐도, 이미지도, 문장도 없었다. 액자 옆에는 작가가 보낸 설명문이 붙었고, 작품 앞에는 운송 상자가 놓였다. 관람자들은 흰 벽 위에 걸린 비어 있는 액자와 그 곁에 덩그러니 놓인 박스를 마주해야 했다. 작품은 마치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바로 그 미완성처럼 보이는 상태가 작품의 핵심이었다. 하닝은 이 작품에 <돈을 갖고 튀어라>라는 제목을 붙였다.¹

 

이 사건의 출발점은 미술관의 의뢰였다. 쿤스텐 현대미술관은 2021년 노동의 조건과 현대적 일의 의미를 다루는 전시 <Work It Out>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술관은 하닝에게 그의 과거 작업을 다시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닝은 이전에 실제 지폐를 액자 안에 넣어 한 국가의 평균 연소득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을 만든 적이 있었다. 오스트리아와 덴마크의 평균 소득을 각각 현금으로 제시함으로써, 임금이라는 추상적 수치를 실제 무게와 부피를 가진 대상으로 바꾸는 작품이었다. 돈은 단순히 작품의 소재가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물질 그 자체였다.²

 

미술관이 원한 것도 바로 그런 작업이었다. 덴마크와 오스트리아의 평균 연소득을 실제 지폐로 보여주는 두 점의 작품. 이를 위해 미술관은 하닝에게 약 53만 2천 크로네(한화 약 1억 원)의 현금을 전달했다. 이 돈은 작가료가 아니라 작품 안에 들어갈 재료비였다. 전시가 끝나면 다시 미술관에 반환되어야 하는 돈이었다. 그리고 이 재료비와 별도로, 미술관은 하닝에게 작품 제작과 전시 참여에 대한 보수로 2만 5천 크로네(한화 약 480만 원)를 지급했다.³

 

하지만 미술관이 받은 것은 지폐가 들어 있는 액자가 아니었다. 운송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비어 있는 액자 두 점만 있었다. 하닝은 미술관에 보낸 이메일에서 자신이 기존 작품을 재제작하는 대신, 전시의 주제와 여전히 관련된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고 알렸다. 그 작품의 제목이 바로 <돈을 갖고 튀어라>였다. 미술관이 기대했던 작품은 평균 소득을 보여주는 물질적 표본이었지만, 하닝이 제출한 작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액자 안에 있어야 할 돈은 사라졌고, 그 돈이 사라졌다는 사실 자체가 작품이 되었다.⁴

 

계약서를 재료로 삼은 작가

하닝의 논리는 분명했다. 그는 자신이 돈을 훔친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덴마크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는 작품은 자신이 그들의 돈을 가져갔다는 사실 그 자체이며, 이것은 절도가 아니라 계약 위반이고, 그 계약 위반 또한 작품의 일부라고 말했다.⁵ 이 말은 이 사건 전체를 압축한다. 하닝에게 작품은 빈 액자가 아니라, 계약을 어기고 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행위였다. 그는 작품의 물리적 결과물보다 행위와 제도적 반응을 더 중요하게 놓았다. 계약서 바깥에서 예술을 만든 것이 아니라, 계약서 자체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하닝의 작업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과의 비교를 자연스럽게 불러온다. 그러나 두 사건은 구분이 필요하다. 뒤샹의 <샘>에서 중요한 것은 변기라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고, 명명하고, 전시에 제출함으로써 미술 제도의 판단 기준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는 점이었다. 뒤샹은 미술이 무엇인지라는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쓴 셈이다.

 

반면 하닝은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이 이미 허용한 개념미술의 문법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는 예술의 경계를 실험했지만, 그 실험은 타인의 돈과 계약 위에서 이루어졌다. 하닝 역시 작품의 물리적 완성보다 행위와 명명, 제도적 반응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개념미술의 계보 안에 있다. 그러나 그의 도발은 예술의 정의를 새로 묻는 사건이라기보다, 개념미술이 이미 만들어놓은 문법을 이용해 제도적 파장을 만들어낸 사건에 가깝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미술사적 도발이면서 동시에 법적 분쟁이 되었다.

 

제도가 비판을 흡수하는 방식

미술관은 처음부터 이 작품을 폐기하거나 전시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을 예정대로 전시했다. 쿤스텐 현대미술관은 빈 액자와 작가의 설명문을 함께 공개했고, 이 사건은 곧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자극적인 제목, 사라진 현금, 빈 액자, 노동 조건에 대한 작가의 주장, 미술관과 예술가 사이의 계약 분쟁은 현대미술을 둘러싼 거의 모든 논쟁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미술관 입장에서도 이 작품은 난처한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강력한 홍보 효과를 가진 사건이었다.

 

그러나 미술관의 태도는 처음부터 낭만적이지 않았다. 미술관은 이 작품을 흥미로운 개념미술로 인정하면서도, 돈은 반드시 반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관장 라세 안데르센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미술관은 부유한 미술관이 아니며, 공적 자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⁶ 이 발언은 사건의 핵심이 단순히 '예술이냐 사기냐'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미술관의 재정과 계약의 책임 문제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An Average Austrian Year Income> 옌스 하닝, 2007년.

예술가의 노동은 어디에서 계산되는가

하닝은 이 상황을 예술가의 노동 문제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 사건을 다시 보게 만드는 사실이 하나 있다. 미술관이 재료비로 건넨 53만 2천 크로네는 실제로 덴마크와 오스트리아 두 나라의 평균 연소득을 현금으로 채우기에 부족한 금액이었다. 두 나라의 평균 연소득을 합산하면 약 74만 5천 크로네로 미술관이 하닝에게 준 돈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다시 말해 미술관이 기대한 방식대로 작품을 완성하려면, 하닝은 부족한 차액을 자신의 돈으로 메워야 했다. 재료비라고 건넨 돈이 정작 그 재료를 사기에도 모자랐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는 인터뷰에서 프레이밍, 운송, 숙박, 보조 인력, 일정 조정 등 부수적인 제작 비용까지 자신이 선지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⁷ 재료비도 부족한데 제작비까지 작가 몫이었던 셈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예술가가 일을 하기 위해 오히려 돈을 써야 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그는 그 구조를 그대로 따르는 대신, 그 구조 자체를 작품으로 폭로하기로 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돈을 갖고 튀어라>는 단순한 빈 액자가 아니게 된다. 작품은 예술계가 예술가에게 요구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낸다. 전시를 위해 작가는 기획 회의에 참여하고, 작품을 운송하고, 인터뷰를 하고, 홍보에 협조하고, 자신의 경력과 명성을 미술관의 전시에 제공한다. 그러나 그 노동은 종종 충분히 계산되지 않는다. 하닝은 바로 그 불균형을 과장된 방식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이 질문이 중요하다고 해서 하닝의 방식이 곧바로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계약서였다. 미술관이 제공한 현금은 작품 제작을 위한 일시적 대여금이었고, 전시 종료 후 반환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작품이 제도 비판을 수행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계약상의 반환 의무를 없애지는 않는다.

 

판결, 합의, 그리고 소장품이 된 분쟁

전시가 끝난 뒤에도 하닝이 돈을 돌려주지 않자, 미술관은 결국 법적 절차에 들어갔다. 2023년 9월 18일, 코펜하겐 지방법원은 하닝이 계약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미술관에 49만 2,549크로네(한화 약 9,400만 원)를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법원은 전시가 실제로 진행되었고, 미술관이 그 작품을 전시의 일부로 활용했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래서 하닝이 받은 일부 금액은 작가료 및 전시료 성격으로 인정되었다.⁸

 

법원의 판단은 현대미술의 의미를 부정한 것이 아니었다. 법원은 이 행위가 예술일 수 있는지의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돈을 돌려주기로 한 계약이 있었는지를 판단했다. 다시 말해 <돈을 갖고 튀어라>는 예술일 수 있지만, 예술이라는 사실만으로 채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닝은 항소 의사를 밝혔고, 분쟁은 2024년에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쿤스텐 현대미술관과 하닝은 오벨 가족 재단(The Obel Family Foundation)의 지원을 통해 합의에 도달했다. 그 결과 미술관은 <돈을 갖고 튀어라>를 소장품으로 확보하게 되었다. 쿤스텐 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이 2024년에 컬렉션에 편입되었고, 덴마크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⁹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에는 계약 위반으로 시작된 작품이, 결국 미술관의 공식 소장품이 된 것이다.

 

이 결말은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미술관은 손해를 주장했지만 세계적 홍보 효과를 얻었고, 작가는 계약 위반자로 비판받았지만 동시에 현대미술의 유명한 사건을 만든 작가가 되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예술가와 사기꾼, 제도와 저항자의 구분이 그렇게 간단히 나뉘지 않는다.

 

 

<풍선과 소녀>가 낙찰되자 파쇄되어 <풍선없는 소녀>가 된다.

도발을 흡수하는 제도

이 사건은 자연스럽게 뱅크시의 파쇄 퍼포먼스를 떠올리게 한다.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풍선과 소녀>가 낙찰되는 순간 액자 속 파쇄 장치가 작동했고, 뱅크시는 그렇게 미술시장의 권위를 조롱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오히려 작품의 가치를 높였고, 미술시장은 그 도발마저 흡수했다. 하닝의 경우도 비슷하다. 그는 미술관의 의뢰와 계약을 뒤집어 제도 비판을 수행했지만, 그 비판은 결국 미술관의 전시와 컬렉션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미술 제도는 자신을 비판하는 행위까지도 전시하고, 해석하고, 소장할 수 있다.

 

지금 이 사건을 다시 보는 일은 한 작가의 기행을 복기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미술 제도가 논란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하고, 다시 자산화하는지를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하닝의 작품은 처음에는 미술관을 난처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미술관의 전시 기록과 소장품 목록 안으로 들어갔다. 제도를 비판한 작품이 제도의 일부가 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현대미술에서 비판은 정말 제도를 흔드는가, 아니면 제도가 스스로를 갱신하는 방식으로 흡수되는가.

 

<돈을 갖고 튀어라(Take the money and run)> 옌스 하닝, 2021년.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

<돈을 갖고 튀어라>의 핵심은 빈 액자가 아니다. 핵심은 돈이 사라졌다는 사실이고, 그 돈이 사라진 사건이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관람자에게 "이것도 예술인가"라고 묻는 동시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하닝은 예술가의 노동 조건을 말했지만, 그 방식은 타인의 돈을 계약과 다르게 점유하는 것이었다. 미술관은 계약 위반을 비판했지만, 동시에 그 위반이 낳은 관심을 전시의 일부로 활용했다. 작품은 바로 이 모순의 한가운데에 있다.

 

예술은 사회적 규범을 흔들고, 제도의 모순을 드러내며, 때로는 기존 질서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이 언제나 법과 계약의 바깥에 있을 수는 없다. 또한 예술가의 노동이 어떻게 계산되고 보상되는가라는 질문은 특정 작가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예술계가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다. 예술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적 판단만으로 이 작품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닝은 돈을 가져갔고, 법원은 반환을 명령했으며, 미술관은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이 모순적인 결말이 이 작품을 여전히 불편하게 만든다. <돈을 갖고 튀어라>는 이미 끝난 사건이지만, 그것이 던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ndnotes

  1. 쿤스텐 현대미술관은 이 작품을 빈 액자만큼이나 행위, 논의, 사후 과정에 관한 작품으로 설명한다. Kunsten Museum of Modern Art Aalborg, "Take the Money and Run."
  2. 미술관의 의뢰는 하닝의 기존 작업인 오스트리아와 덴마크의 평균 연소득을 실제 지폐로 제시하는 작품을 재제작하는 것이었다. AP News, "A Danish artist who submitted empty frames as artwork is appealing court ruling to repay the cash," September 27, 2023.
  3. 미술관이 현금과 별도로 작가의 노동에 대한 보수를 지급했다는 내용은 AP 보도에 근거한다. AP News, "A Danish artist who submitted empty frames as artwork is appealing court ruling to repay the cash," September 27, 2023.
  4. 작품이 빈 액자 두 점으로 도착했고, 하닝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내용은 Kunstkritikk 보도에 근거한다. Pernille Albrethsen, "Jens Haaning Reaches Settlement with Danish Museum," Kunstkritikk, May 16, 2024.
  5. 하닝이 "작품은 내가 그들의 돈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절도가 아니다. 계약 위반이며, 계약 위반은 작품의 일부다"라고 말한 내용은 덴마크 라디오 P1 Morgen 인터뷰를 인용한 가디언 기사에 근거한다. Harriet Sherwood, "Danish artist who submitted empty frames as artwork told to repay funding," The Guardian, September 18, 2023.
  6. 라세 안데르센 관장이 "우리는 부유한 미술관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며,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 내용은 가디언 인터뷰에 근거한다. Harriet Sherwood, "Danish artist who submitted empty frames as artwork told to repay funding," The Guardian, September 18, 2023.
  7. 하닝이 프레이밍, 운송, 숙박, 보조 인력 등의 비용 문제와 미술관의 지급 방식에 대해 설명한 내용은 Kunstkritikk 인터뷰에 근거한다. Pernille Albrethsen, "Follow the Money," Kunstkritikk, October 8, 2021.
  8. 2023년 9월 코펜하겐 지방법원이 하닝에게 49만 2,549크로네 반환을 명령했고, 일부 금액은 작가료 및 전시료 성격으로 인정했다는 내용은 AP 보도와 Kunstkritikk 보도에 근거한다. AP News, "A Danish artist who submitted empty frames as artwork is appealing court ruling to repay the cash," September 27, 2023; Pernille Albrethsen, "Jens Haaning Reaches Settlement with Danish Museum," Kunstkritikk, May 16, 2024.
  9. 2024년 합의 이후 쿤스텐 미술관이 오벨 가족 재단의 지원을 통해 <돈을 갖고 튀어라>를 컬렉션에 편입했다는 내용은 쿤스텐 현대미술관의 작품 설명과 Kunstkritikk 보도에 근거한다. Kunsten Museum of Modern Art Aalborg, "Take the Money and Run"; Pernille Albrethsen, "Jens Haaning Reaches Settlement with Danish Museum," Kunstkritikk, May 16, 2024.

 

Bibliography

  • Albrethsen, Pernille. "Follow the Money." Kunstkritikk, October 8, 2021.
  • Albrethsen, Pernille. "Jens Haaning Reaches Settlement with Danish Museum." Kunstkritikk, May 16, 2024.
  • AP News. "A Danish artist who submitted empty frames as artwork is appealing court ruling to repay the cash." September 27, 2023.
  • Kunsten Museum of Modern Art Aalborg. "Take the Money and Run."
  • Sherwood, Harriet. "Danish artist who submitted empty frames as artwork told to repay funding." The Guardian, September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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