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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설득을 넘어서는 언어적 사건

숭고라는 단어를 평소에 우리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숭고라는 명사 대신에 “숭고하다”라는 형용사가 아마 더 익숙할 것이다. 숭고한 희생, 숭고한 사랑 등 우리는 숭고를 그 자체로 다루기보다는 부수적인 형용사로 사용하는 것이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미학에서는 숭고를 형용사가 아닌 명사 그 자체로 다룬다. 어느 명사를 꾸미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숭고는 미(美)의 한 종류가 아니라 별도의 미학 영역이다. 도덕적으로 고상하고 우월한 대상을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상징적인 관념과는 다소 동떨어진 개념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숭고함은 위대 · 장엄 등 윤리적 맥락이고, 미학에서의 숭고 개념은 물론 위대 · 장엄도 포함하지만 혐오스러운 것, 무서운 것, 섬뜩한..

미학 19:29:57

숭고 미학

놀랍게도 저건 예술 작품이다. 그 잠재 가치는 무려 1조 원이라고 추정하더라. 아 물론 그림은 저 검은 사각형 하나다. 가장자리의 흰 부분은 그림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나열해 보면 위의 그림과 같은 추상화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가치를 의심한다. 사람들은 마크 로스코나 잭슨 폴록과 같은 현대 미술작가—더 나아가서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현대 미술에서 작품 내 미적 정보(대지)와 의미 정보(세계)가, 관람자가 “그림의 내용”을 곧장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매끈하게 조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용어를 빌리자면 미적 정보는 대지(Erde), 의미 정보는 세계(Welt)로 볼 수도 있겠다. 대지는 ‘..

미학 2026.01.11

숭고(Sublime)에 대한 증언

추상화에 대한 미학적 변명은 대중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들이 작품이라는 사물 앞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고, 인식하는 대상이 없기에 당연히 작품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로스코의 색면회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그의 작품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명상을 한다더라.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치는 벽지와도 같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작품을 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그 작품을 대상으로 반달리즘적 테러를 실행한다. 대체 텅 빈 화면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앞의 사례들을 고려할 때 회화란 단순한 물감 덩어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무엇인가 보다.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의 미학은 아름다움의 규범을..

미학 2026.01.03

숭고(Sublime)라는 사건

바넷 뉴먼의 「숭고는 지금(The Sublime Is Now)」은 서구 미술이 오랫동안 신뢰해 온 미학적 범주, 곧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정면에서 거부하는 선언문이다. 뉴먼에게 문제는 특정 사조나 양식의 한계가 아니라, 서구 미술 전체가 숭고를 말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숭고한 경험을 생산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이 실패의 원인을 르네상스 이후 회화가 지속적으로 감각의 세계와 대상의 세계에 머물러 왔다는 점에서 찾는다. 회화는 조화와 완결성, 감각적 쾌락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움을 조직해 왔고, 그 과정에서 숭고는 언제나 형식 속으로 흡수되거나 감각의 문제로 축소되었다.뉴먼은 근대 미술 역시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본다. 그는 “근대 미술의 충동은 아름다움을 파괴하려는 욕망이었다”¹고 말하..

미학 2025.12.28

보이지 않는 중심―푸코의 〈시녀들〉과 고전주의 에피스테메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은 철학서로서는 이례적으로 한 점의 회화에서 시작된다. 그는 서두에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을 호출하며, 이 작품을 단순한 미술사적 걸작이 아니라 서구 지식의 구조, 즉 하나의 에피스테메(épistémè)가 가장 응축된 형태로 드러난 장면으로 해석한다. 푸코에게 이 그림은 예시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그는 “이 그림은 단순한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재현 그 자체를 재현한다”고 말하며, 회화를 통해 사유의 조건을 드러내고자 한다.¹​푸코의 분석은 시선에서 시작된다. 에서 시선은 일방적이지 않다. 화가 벨라스케스는 캔버스 앞에 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그 응시는 자연스럽게 관람자를 향한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관람자가 아니라, 관람자가 서 있는 자리에 놓여 있어..

미학 202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