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숭고(Sublime)에 대한 증언

오경수 2026. 1. 3. 15:38
<Adam> 바넷 뉴먼, 1951-1952년.

추상화에 대한 미학적 변명은 대중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들이 작품이라는 사물 앞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고, 인식하는 대상이 없기에 당연히 작품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로스코의 색면회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그의 작품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명상을 한다더라.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치는 벽지와도 같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작품을 보고 감정이 격해져서 그 작품을 대상으로 반달리즘적 테러를 실행한다. 대체 텅 빈 화면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기에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앞의 사례들을 고려할 때 회화란 단순한 물감 덩어리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무엇인가 보다.

<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 IV> 바넷 뉴먼, 1969-1970년. ​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1924~1998)의 미학은 아름다움의 규범을 정식화하려는 이론이 아니라, 예술이 더 이상 세계를 의미로 환원할 수 없게 된 조건을 사유하려는 철학적 작업이다. 현대예술이 관객에게 남기는 지배적인 인상이 조화나 형식미가 아니라 충격이라면, 미(美)는 이미 이 현상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전환을 진중권은 미술사의 장기적 흐름 속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과거의 예술이 유한한 대상의 미를 재현하려 했다면, 현대 예술은 무한한 대상의 숭고를 현시하려 하며, 이를 위해 형상은 점차 지워지고 화면은 마침내 텅 빈 공간에 이른다. 이 형상의 소거는 단순한 양식적 실험이 아니라, 말할 수도, 볼 수도, 떠올릴 수도 없는 것이 존재함을 증언하려는 시도이며, 오늘날 예술이 미가 아니라 숭고를 추구하게 된 역사적 징후다.¹

리오타르는 이와 같은 미술사적 전환을 철학적으로 정식화한다. 그는 칸트의 숭고 개념을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자연의 압도적 크기나 대상의 속성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숭고는 사물 안에 있는 성질이 아니라, 인식 능력이 더 이상 제시할 수 없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숭고의 분석에 대한 강의』에서 말하듯, 숭고는 “사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시하지 못하는 능력의 실패 속에 있다.”² 이 실패는 결핍이 아니라, 의미 이전의 감각이 노출되는 순간이며, 예술은 바로 이 순간을 현존하게 만드는 장이 된다.

이러한 숭고 개념은 리오타르에게서 곧 포스트모던 예술의 정의로 확장된다. 포스트모던적인 예술가와 사유 주체는 기존의 규칙에 지배당하지 않으며, “아무런 규칙도 없이 만들어질 것의 규칙들을 만들기 위해 작업한다.”³ 예술은 더 이상 주어진 형식을 반복하지 않고, 형식이 붕괴되는 지점에서 자신의 조건을 드러내는 사건이 된다.

<Onement III> 바넷 뉴먼, 1949년.

이 지점에서 리오타르는 반복적으로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을 호출한다. 뉴먼의 회화는 전통적인 재현이나 기교를 거의 완전히 배제한다. 진중권 교수님이 지적하듯, 그의 작업에서는 이렇다 할 기법도, 붓질도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비기교성은 기술적 결핍이 아니라, 회화가 더 이상 현실을 묘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재현의 침묵을 통해 뉴먼의 회화는, 예술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이 세계에 존재함을 말한다.⁴

그러나 뉴먼의 회화를 이러한 비재현성만으로, 다시 말해 ‘아무 내용도 없는 순수 형식’으로 환원하는 해석은 충분하지 않다. 진중권이 지적하듯, 그린버그의 형식주의적 독해는 뉴먼을 평면성의 극단으로만 이해하려 했지만, 이는 일면적이다. 뉴먼의 관심은 현실의 추상이 아니라, 초월적 체험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에 있었기 때문이다.⁵ 이 지점에서 뉴먼의 회화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을 발생시키는 장치로 재위치된다.

이러한 점에서 뉴먼의 회화는 리오타르가 말한 숭고 개념과 정확히 맞물린다. 하지만 예술로 숭고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매체는 유한하지만 숭고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리오타르는 뉴먼의 방식을 ‘숭고의 부정적 묘사’라고 부른다. 이는 무언가를 묘사하기를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다.⁶ 뉴먼의 텅 빈 캔버스가 증언하는 것은 어떤 대상이 아니라, 바로 그 사건 혹은 사건 그 자체다.

리오타르는 이 사건성을 ‘지금(now)’이라는 개념으로 사유한다. 「Newman: The Instant」에서 그는 뉴먼의 회화를 연대기적 시간의 한순간이 아니라, 발생 그 자체로 규정한다. “회화는 바로 그 ‘지금’이 발생하는 사건이다.”⁷ 이 ‘지금’은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it happens, 즉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현시한다.

이 숭고의 시간성은 박정자 교수님의 분석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박정자는 『숭고 미학』에서 숭고의 ‘지금’을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연속적 시간에서 분리한다. 과거와 미래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반면, 현재는 붙잡으려는 순간 사라지는 “송곳만큼 작은 면적”의 시간이다. 숭고의 ‘지금’은 지속되는 현재가 아니라, 사건 이전의 순수한 일어남이 미끄러지듯 발생하는 순간이다.⁸ 이 시간은 의식에 의해 구성되지 않으며, 오히려 의식을 해체하고 의미화 이전의 상태를 노출시킨다.⁹

<Uriel> 바넷 뉴먼, 1955년.

이로써 숭고는 작품 안에 내재한 성질이 아니라, 작품과의 대면에서 발생하는 체험이 된다. 리오타르가 말하듯, 숭고는 예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 속에서 발생한다.¹⁰ 오늘날 미학의 문제는 더 이상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예술적 사건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동한다.

결국 리오타르의 숭고론은 현대예술이 왜 재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특히 뉴먼의 회화에서 그것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술은 더 이상 세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설명될 수 없음이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증언한다. 예술작품은 의미를 전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의미가 도달하지 못하는 순간을 현존하게 만드는 사건의 장이 된다. 따라서 뉴먼의 회화는 벽면이 아니라, 재현 이후의 예술이 도달한 숭고—곧 ‘지금 여기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는 체험—로 관람자를 인도하는 문이다.

<Voice of Fire> 바넷 뉴먼, 1967년.

타락한 인간이 바벨의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의 아담의 언어라는 게 정말로 존재했을까? 만약 그것이 존재했고, 아직까지 그 어휘와 문법이 남아있다면 추상화가 우리에게 그 언어로 말을 걸기에 바벨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침묵이란 언어로 우리의 정동을 울리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추상화가 물감 덩어리임에도 형이상학적이며 동시에 매혹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도파민에 절여진 타락한 현대인이 예술이 말하는 아담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가 있겠는가.

Endnotes

  1.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3』 (서울: 휴머니스트, 2022), 220.
  2. Jean-François Lyotard, Leçons sur l’Analytique du sublime (Paris: Galilée, 1991), 12.
  3. 김상현, 「숭고와 전체주의에 맞선 대항」,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2024), 297.
  4. 진중권, 『현대미학 강의』 (서울: 아트북스, 2003), 232.
  5. 진중권, 『서양미술사—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서울: 휴머니스트, 2013), 87.
  6. 같은 책, 93.
  7. Jean-François Lyotard, “Newman: The Instant,” in The Inhuman: Reflections on Time, trans. Geoffrey Bennington and Rachel Bowlb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1), 81.
  8. 박정자, 『숭고 미학』 (서울: 기파랑, 2023), 114.
  9. 같은 책, 115.
  10. 진중권, 『현대미학 강의』, 249.

References

  • 김상현. 「숭고와 전체주의에 맞선 대항」.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서울: 문학과지성사, 2024.
  • 박정자. 『숭고 미학』. 서울: 기파랑, 2023.
  • 진중권. 『현대미학 강의』. 서울: 아트북스, 2003.
  • ——. 『서양미술사—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서울: 휴머니스트, 2013.
  • ——. 『미학 오디세이 3』. 서울: 휴머니스트, 2022.
  • Lyotard, Jean-François. Leçons sur l’Analytique du sublime. Paris: Galilée, 1991.
  • ——. The Inhuman: Reflections on Time. Translated by Geoffrey Bennington and Rachel Bowlb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1.
  • Newman, Barnett. “The Sublime Is Now.” Tiger’s Eye 1, no. 6 (1948): 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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