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롱기누스—설득을 넘어서는 언어적 사건

오경수 2026. 1. 14. 19:29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 1787년.

숭고라는 단어를 평소에 우리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다. 숭고라는 명사 대신에 “숭고하다”라는 형용사가 아마 더 익숙할 것이다. 숭고한 희생, 숭고한 사랑 등 우리는 숭고를 그 자체로 다루기보다는 부수적인 형용사로 사용하는 것이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미학에서는 숭고를 형용사가 아닌 명사 그 자체로 다룬다. 어느 명사를 꾸미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숭고는 미(美)의 한 종류가 아니라 별도의 미학 영역이다. 도덕적으로 고상하고 우월한 대상을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상징적인 관념과는 다소 동떨어진 개념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숭고함은 위대 · 장엄 등 윤리적 맥락이고, 미학에서의 숭고 개념은 물론 위대 · 장엄도 포함하지만 혐오스러운 것, 무서운 것, 섬뜩한 것들에까지 확대되기 때문이다. 숭고는 고대–로마 제정기 수사학 전통에서 고전적으로 논의되었고, 18세기의 버크와 칸트에 의해 본격적으로 미학에 편입되었다.”¹

앞에서 말했듯이 숭고를 최초로 정식화한 사람이 칸트였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현존하는 서구 전통의 숭고론 가운데 가장 이른 대표 고전 텍스트로는 ‘롱기누스’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저자 미상의) 『숭고에 관하여(On the Sublime)』가 자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이름’이라기보다, 이 텍스트가 숭고를 웅변과 문체의 문제로 정면에서 붙잡았다는 점이다. 웅변의 덕목은 설득이지만, 단순히 설득만으로는 “좋은 웅변”에 도달할 수 없다고 그는 본다. 설득을 능가하는 어떤 힘, 즉 독자를 흔들어 자기 밖으로 데려가는 힘이 있으며, 그 힘을 그는 숭고라고 부른다. 박정자는 이 대목을 “설득을 능가하는 덕목”으로서의 숭고, “독자를 감동하게 만드는 표현의 우수성이나 독특함”으로 요약하면서, 숭고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위로 들어 올려져 고양되고, 우리는 마치 우리 자신이 그것들을 만들어 낸 것처럼 자랑스러운 기쁨으로 충만”해진다고 정리한다.² 이 요약은 『숭고에 관하여』가 숭고를 ‘아름다운 말의 장식’이 아니라, 문장이 도달하는 순간 독자의 상태를 바꿔버리는 언어적 사건으로 이해한다는 점을 정확히 붙든다.

덧붙이면, 『숭고에 관하여』가 “숭고를 논한 최초의 텍스트”라고 단정되기 어려운 이유도 이 글 안에 이미 들어 있다. 이 텍스트는 스스로가 선행 논의(예컨대 카이킬리오스의 숭고론)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 점에서 자신을 하나의 ‘기원’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문제틀을 가장 강력한 형태로 압축·정식화한 텍스트로 위치시킨다. 그래서 “누가 처음 말했는가”라는 질문은, 오히려 숭고가 무엇을 ‘하게 만드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뀐다. 이 글에서 숭고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정신의 상태를 바꾸는 작동이다.

롱기누스의 말이 단순히 “감동적인 언어”를 찬양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가 숭고를 설득의 기술과 구별되는 강제력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는 숭고한 구절이 독자의 이성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자기 밖으로 데려간다”고 말하며, 숭고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독자를 흔들어 놓는다고까지 말한다.³ 여기서 숭고는 ‘좋은 논증의 승리’가 아니라, 이해와 판단 이전에 먼저 도달하는 어떤 압도다. 그러므로 롱기누스가 말하는 숭고는 단지 “아름다운 담론이 주는 쾌”로 환원되기 어렵다. 그것이 분명 쾌의 계열을 건드리기는 하지만, 그 쾌는 흔히 말하는 의미에서의 명료한 쾌락이 아니라, 언어로 재현될 수 있는 감정의 목록에 고분고분 들어가지 않는 잉여—즉 말이 말 이상을 남기는 초과로 나타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년.

이 초과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롱기누스가 내세우는 것은 지속성이다. 참된 숭고는 순간의 번쩍임이 아니라, 반복해서 읽어도 힘이 약해지지 않고 독자의 정신을 계속 들어 올리며, 주의를 떼어내기 어렵고 기억에 완고하게 달라붙는다고 그는 말한다.⁴ 숭고는 “이해했기 때문에 남는 것”이라기보다, 이해가 끝난 뒤에도 마음이 계속 붙잡히는 잔상이다. 그 잔상 속에서 독자는 이상한 자부를 경험한다. 그는 참된 숭고 앞에서 영혼이 들어 올려지는 감각을 느끼고, 읽고 있는 사유가 마치 자신의 안에서 발생한 것처럼 기쁨과 자부로 충만해진다고 말한다.⁵ 박정자가 압축해 번역·정리한 “우리가 마치 우리 자신이 그것들을 만들어 낸 것처럼 자랑스러운 기쁨으로 충만”해진다는 문장은, 바로 이 체험의 핵심을 한국어로 고정한 표현이다.

그렇다면 롱기누스가 말하는 숭고는 결국 “언어가 주는 감동”인가. 그렇다고만 하기에는, 롱기누스가 말하는 감동은 ‘의미 전달의 성공’이나 ‘미사여구의 완성도’와 다른 차원에서 발생한다. 숭고는 문장이 독자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한 결과가 아니라, 문장이 독자의 정신을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순간—즉 언어가 단순한 기호 전달을 넘어 정신의 고도 자체를 바꾸는 순간—에 발생한다. 그래서 그는 숭고를 만드는 근원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면서도, 그것이 단지 테크닉의 조합이 아니라 사유의 위대함과 정념의 진정성에 기대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래 다섯 원천은 숭고를 ‘만드는 법’의 목록이라기보다, 위대함이 추락하지 않도록 지탱하는 구조에 가깝다.⁶

숭고를 만드는 근원들

  1. 사유의 위대함
  2. 정념의 힘
  3. 수사적 도형의 적확한 운용
  4. 품위 있는 표현
  5. 장엄한 구성

고대에서 예술은 오늘날의 “순수미술”로 분화되기 이전에 폭넓게 테크네(techne)의 이름 아래 놓여 있었고, 수사학은 그 핵심적 기술들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롱기누스가 회화나 조각 같은 물질적 작품이 아니라 발화와 문체를 통해 숭고를 논하는 것은, 예술적 감정이 말과 무관한 영역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말이야말로 고대적 테크네의 중심부에서 인간을 고양시키는 가장 직접적인 작동 방식을 제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숭고는 대상(작품)의 속성이기 전에, 독자(청중)의 영혼이 들어 올려지는 체험이며—그리고 롱기누스에게 그 체험의 가장 결정적인 매개는 바로 “잘 말해진 말”이었다.

Endnotes

  1. 박정자, 『숭고 미학』, (서울: 기파랑, 2023), 5–6.
  2. Ibid., 24–25.
  3. [Pseudo-Longinus], On the Sublime, trans. H. L. Havell (London: Macmillan, 1890), I.4. “A lofty passage does not convince the reason of the reader, but takes him out of himself… the Sublime… sways every reader whether he will or no.”
  4. Ibid., VII.3–4. “when it is hard, nay impossible, to distract the attention from it, and when it takes a strong and lasting hold on the memory…”
  5. Ibid., VII.2. “feel our souls lifted up by the true Sublime… filled with joy and pride, as though we had ourselves originated the ideas which we read.”
  6. Ibid., VIII. “the five principal sources… from which almost all sublimity is derived…”

Bibliography

저서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 | 오경수 - 교보문고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 | 현대미술이 왜 이렇게 난해하고, 대중과 멀어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예술과 철학에 대한 담론을 독자와 나눔으로써, 실존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여기는 것

product.kyobobook.co.kr

 

 

형이상학적 시선 | 오경수 - 교보문고

형이상학적 시선 | 그대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때론 바라볼 수 없는 초월적인 무언가가 가치를 정하고, 그 존재가 딛고 있는 세계가 그 존재 자체와는

product.kyobobook.co.kr